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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에 담긴 무역전쟁… 미·캐 소비자만 피해 본다

2025.07.23 박재한 기자

미국과 캐나다 간 무역 갈등이 양국 소비자들의 술잔까지 흔들고 있다. 캐나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캐나다에서 판매된 미국산 증류주 매출은 전년 대비 66.3% 급감했다. 이는 각 주정부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에 맞서 미국산 주류 제품을 매장에서 철수한 조치에 따른 결과다.

판매 급감은 미국산 주류에만 그치지 않았다. 같은 기간 국내산 증류주 판매도 6.3% 줄었고 전체 주류 시장 매출은 12.8% 감소했다. 3월에는 전체 주류 매출이 전년 동월보다 20.6% 줄었고 4월에도 3.3%의 감소세를 이어갔다. 미국이 3월부터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캐나다는 보복 관세로 대응했고 각 주정부는 미국산 주류의 유통을 제한하며 맞불을 놨다. 그 결과 미국산 버번 위스키와 와인 등의 제품은 주요 매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미국 증류주협회와 스피리츠 캐나다는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혼란은 소비자, 기업, 정부 재정 모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개방적이고 상호적인 무역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캘 브리커 스피리츠 캐나다 대표는 “미국산 주류를 대체할 제품은 많지 않다”고 했고 미국 측 협회장 크리스 스웡거는 “이제는 미국 제품을 캐나다 매장에 다시 진열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캐나다 각 주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온타리오주의 더그 포드 주총리는 “이럴수록 캐나다산을 더 사야 한다”며 다른 주들도 ‘미국산 제품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캐나다산 자동차, 주류, 모든 제품을 더 많이 사는 것이 미국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사 피트 후크스트라가 워싱턴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가 무역 협상에서 매우 까다롭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데 대해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데이비드 이비 주총리는 “그 말은 우리가 제대로 압박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응수하며 보이콧 유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국산 와인 수입은 더욱 극적으로 줄었다. 지난 4월 캐나다가 수입한 미국산 와인은 298만 달러로 전년 동기 5,360만 달러에 비해 무려 94%나 감소했다. 5월 수입액은 110만 달러로 이 역시 전년의 4,600만 달러에서 급감한 수치다. 켄터키주의 한 소규모 증류업체 대표는 “우리는 이 무역전쟁의 부수적 피해자일 뿐”이라며 “제품 수출이 끊기고 유통이 불확실해져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류업체는 “주정부의 결정이 관세보다 더 파괴적이다”고 주장했다.

시장조사업체 민텔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주류 판매 감소는 단순히 무역 보복 조치 때문만은 아니다. 민텔의 선임 분석가 캔디스 발다사레는 “미국과 캐나다 모두에서 동시에 주류 소비가 줄어든 것은 물가 상승, 고금리, 생활비 부담 증가 등 광범위한 경제적 압박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정치적 무역 보복이 실질적 생활 소비에 미치는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적 실익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운 대응이 양국 소비자와 중소 제조업체를 동시에 고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역정책이 단순한 정치적 수단을 넘어 민생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병의 술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빈 매대뿐 아니라 불확실성과 불신으로 가득 찬 양국 관계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무기처럼 활용되는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부추기는 수사보다 대화와 협력으로 풀어가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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