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한 칼럼 - [기후 위기 속에서 심화되는 주거 불평등]
- 토론토포스트
- 4월 27일
- 3분 분량

기후 위기는 이제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인간 사회의 기반을 뒤흔들며 가장 약한 고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주거 불평등 문제는 기후 재난 앞에서 더욱 심각하게 구조화되고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는 기후 재난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가장 가혹한 타격을 가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UN Habitat(유엔 인간정주 프로그램) 또한 2022년 보고서에서 세계 도시 거주민의 약 24%가 비공식 정착지에 살고 있으며, 이들이 홍수, 폭염, 폭풍 등 기후 재난에 가장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위기와 주거 불평등은 단순히 나란히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를 증폭시키며 더 깊고 복잡한 위기를 만들어낸다.
기후 재난에 취약한 주거 환경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빈도와 강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EM-DAT(국제재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자연재해 발생 건수는 연평균 350건 이상으로 1980년대 대비 약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재해는 주거 환경에 따라 피해 강도가 달라진다. UNEP(유엔환경계획)의 보고서에 의하면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는 지역의 75% 이상이 저소득 국가와 개발도상국에 집중되어 있고 이 지역들의 많은 주민들이 불안정한 주거지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종종 기후 재난에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어 재난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피해 복구의 속도도 느리다.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주거지는 주로 저지대, 홍수 위험 지역, 열섬 현상이 심한 도시 외곽 지역에 몰려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는 매년 홍수로 큰 피해를 입고 있으며 2020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홍수로 인해 총 피해액은 약 60억 달러(약 7조 8천억 원)에 달하며 피해자의 대부분은 빈민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예로 미국 뉴올리언스를 들 수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을 때 재난 피해는 특정 지역 특히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로워 나인스워드 지역에 집중되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총 피해액은 1,250억 달러(약 162조 원)로 추산되며 이 중 상당 부분은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카트리나 이후 뉴올리언스는 재건 과정에서 백인 중산층 지역은 빠르게 재건되었으나 빈민가 지역의 복구 속도는 더뎠다.
저소득층이 기후 재난에 더 취약한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낡은 주택이나 위험 지역에 살기 때문만이 아니다.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이들은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재건이나 대피와 같은 중요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가 더욱 가속화될수록 이러한 주거 불평등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에너지 빈곤과 건강 문제
에너지 빈곤은 기후 변화 대응 과정에서 새롭게 부각된 주거 불평등 문제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2023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약 7억 3천만 명이 기본적인 전기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저소득층이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2022년 유럽연합(Eurostat)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6.9%의 가구가 겨울철에 충분한 난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소득 하위 20% 가구에서는 그 비율이 18%로 급증했다. 이는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높은 난방 비용과 낮은 에너지 효율성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에너지 비용 상승과 관련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으며 폴란드의 저소득층 가구의 약 40%가 겨울철에 충분한 난방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보고되었다
캐나다 또한 에너지 빈곤이 특히 두드러진 문제로 나타난다. 캐나다의 기후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10°C 이하로 내려가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난방비 부담이 크고 저소득층 가구는 에너지 효율이 낮은 주택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캐나다 통계청에 의한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의 저소득층 가구 중 약 15%가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캐나다 보건 연구소에서는 에너지 빈곤에 놓인 가구에서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일반 가구보다 5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 건강의 문제로 직결된다.
친환경 도시계획 속 갈등
최근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친환경 도시계획은 환경적,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들은 주거지 개선, 녹지공간 확장, 교통 시스템 혁신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도시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집값상승과 임대료 인상으로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은 그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상류층이 저소득층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이주하여 해당 지역의 집값과 생활비를 급격히 상승시키는 현상이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택 가격을 기록하는 도시 중 하나로 친환경 도시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가구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콩 정부는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교통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고 대중교통의 전기화와 녹지공간 확장을 목표로 한 친환경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고층 건물과 자원 절약형 건축을 통해 도시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집값의 급등이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홍콩의 주택 가격은 약 70% 상승했으며 이는 많은 저소득층 가구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특히 친환경 도시계획에 따른 고급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은 점점 더 주거지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홍콩과 같은 도시들이 친환경 도시계획을 추진하면서도 사회적 공평성을 보장할 수 있다면 개발이 오히려 모든 계층을 위한 기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재개발이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기후 위기 시대의 주거 불평등 심화는 단순히 주거 문제를 넘어서 인간 존엄성과 생명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 재난에 대한 대응, 에너지 효율성 개선, 친환경 도시계획은 반드시 사회적 형평성과 통합적 관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이 더욱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지속 가능한 미래는 모두에게 안전하고 존엄한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후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구체적 실천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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